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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류열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
하지만 한때 ‘임시수도’이자 부산의 중심이었던 부산 원도심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경남도청은 경남 창원으로 떠나버렸고, 부산시청은 연제구 연산동으로 이전해갔다. 관공서들이 떠나가면서 현재 원도심은 도심공동화와 인구고령화로 인한 소멸위기 지역이 됐다. 현재 부산 중구의 인구는 4만4000명, 동구는 9만명, 서구는 11만명, 영도구는 11만9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4개 자치구를 모두 통합해도 36만명가량에 그친다. 부산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해운대구(41만명) 하나에도 못 미친다.
부산일보 일선 기자 출신으로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거쳐 사장까지 지낸 그는 ‘원도심 이야기’란 책을 통해 소멸위기에 처한 원도심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 원도심 재생사업에 따른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전달하는 이 책은 부산 원도심 재생에 관한 여러 아이디어를 담고 있어서 시선이 끌린다.
“도시재생 사업 1번지 부산”
안병길 원장은 “부산은 도시재생 1번지”라며 “약 10년 전부터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돼 약 300여개 프로젝트에 약 1조6000억원의 돈이 투자됐다”고 했다. 하지만 6·25전쟁 때 전국에서 피란민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부산은 지난 10년간의 도시재생 사업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부산 동구 안창마을 같은 곳은 부산에서 유일하게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다. 주민들은 지금도 프로판가스로 취사를 하고 재래식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실정이라고 한다.
반대로 일부 지역은 개발 위주의 도시재생 사업으로 인한 급격한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같은 부작용도 적지 않다. 그는 “주민 중심으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식으로 도시재생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원도심 고령화 역시 그가 요즘 화두로 삼는 문제다. 그에 따르면, 원도심 일부 구의 출생자 대 사망자 비율은 최대 222%에 달한다. 태어나는 사람보다 죽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 소멸은 시간 문제다. 그렇다고 산비탈에다 아파트도 부족한 원도심으로 아이를 둔 젊은 부부들이 다시 이주해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일례로 원도심에는 아이들을 키울 만한 보육시설도 부족하다. 안 원장은 “부산 동구는 유치원이 3곳, 서구는 5곳에 불과하다”며 “이런 곳에 젊은 부부들이 들어오려고 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결국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원도심 곳곳의 빈 건물들을 재활용하는 것이다. 그는 “부산 동구 남문시장만 가도 한 개 층이 다 비어 있는 건물들이 있다”며 “원도심의 빈 건물은 청년 창업자들을 위한 IT 창업시설 등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젊은이를 위한 창업시설이 생기면 젊은층도 조금씩 유입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다.
원도심 주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령인구를 위해서는 ‘복합시니어타운’을 활성화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수많은 노인 복지 프로그램들을 한곳에서 누릴 수 있게 하는 ‘노인 유치원’과 같은 개념이다. 그는 “인구가 줄어드는 동구나 서구에는 빈 학교도 많고 도서관에 학생들이 없어서 없앨 판국”이라며 “이런 유휴공간을 이용해서 ‘복합시니어타운’으로 활용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산복도로 중심 수평·수직축 연결”
안병길 원장은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수평과 수직을 촘촘하게 연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산은 동구 증산공원에서 서구 송도해수욕장 아래 암남공원에 이르는 길이 21㎞의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주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꼬불꼬불하고 비좁은 산복도로 폭을 늘리고 이를 중심으로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모노레일 등 수직축을 촘촘히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는 고령화가 심해 계단을 오르내리기조차 힘든 주민들의 위한 어쩔 수 없는 대안이기도 하다.
그는 “수직축은 관광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부산과 지형이 비슷한 홍콩에서는 산동네를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 산악트램 등을 주민편의뿐만 아니라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쓰고 있다. 부산항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서구 천마산 등지에도 잘 활용하면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할 산동네가 수두룩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안병길 원장이 부산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 추진한 부산 영도 라발스호텔도 원도심 활성화의 성공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부산 원도심과 마주한 영도는 영도다리(영도대교), 태종대 등 훌륭한 관광명소를 갖췄지만 그간 변변한 관광호텔조차 한 곳 없었다. 이에 안병길 원장은 부산일보 사장으로 있을 때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사이의 버려진 부둣가 창고 부지를 주목했고 여기에 지역 건설사와 공동으로 분양형 호텔을 건립했다.
이 호텔이 요즘 영도의 랜드마크로 떠오른 라발스호텔이다. 영도대교와 부산대교, 부산항, 부산타워, 영도 봉래산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요지에 들어선 호텔로, 특급호텔들이 모두 해운대 등지로 떠나버린 원도심을 대표하는 새로운 명소가 됐다. 안 원장은 “원래 일제강점기 때 부둣가에 각종 선박 기자재들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곳”이라며 “호텔이 들어서면서 주변도 깨끗해졌고 아직 문을 연 지 1년이 안 됐지만 안착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북항 ‘오픈 카지노’ 허용해야”
안 원장은 “동구 부산역 맞은편 북항 매립지(1단계)에는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와 같은 복합리조트(IR)를 유치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오픈 카지노’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산과 셸던 아델슨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 회장과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셸던 아델슨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 회장은 2018년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찾아간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을 만든 세기의 카지노 재벌이다.
한데 셸던 아델슨 회장이 마침 ‘6·25전쟁 참전용사’여서 한국에 대해 잘 알고, 부산항 북항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이 안 원장의 전언이다. 하지만 한국의 오픈 카지노 불허로 인해 끝내 부산항 북항 투자를 주저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라스베이거스샌즈그룹의 북한 원산 갈마해안 투자설이 나오는 중이다. 안 원장은 ‘세미 오픈 카지노’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내국인들의 출입횟수를 제한하고, 10만원가량의 내국인 입장료를 부과하는 식으로 도박중독자 양산은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 원장은 부산 원도심 활성화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경부선 철도 처리방안에 대해서도 구상을 밝혔다. 부산 동구에 있는 부산역을 시종착역으로 하는 경부선 철로는 부산 동구를 동서로 단절하고 있다. 특히 부산역 동편 북항 매립지(1단계) 일대는 부산일보를 비롯해 부산 MBC 등 부산 지역 언론사들도 대거 이전하는 업무지구로 개발 예정인데, 경부선 철로가 원활한 접근을 막고 있다. 그는 “최소한의 선로만 남기고, 조차장 등을 부산신항 일대로 이전해 원도심에서 북항 매립지 일대로 원활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안병길 원장은 최근 예비후보 등록을 마치고 오는 4월 총선 부산 서구동구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부산 서구동구 현역 의원인 유기준 의원(4선)과 자유한국당 내 공천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근혜 정부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유기준 의원이 최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낙선하면서 기세가 많이 위축됐다고 하나, 서구에서만 내리 4선을 하면서 다진 지역기반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는 “부산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역밀착형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부산 원도심 4구에서는 김영삼, 서석재, 박찬종, 노무현, 김형오, 정의화, 김무성 등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정치인을 여럿 배출했지만 정작 부산 원도심의 상황은 오늘날과 같다. 안병길 원장은 “도시가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는 하나 거기에 대한 고민과 대비가 있어야 했다”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기존 정치인들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게리맨더링’ 부산 서구동구 선거구 해법은
“부산 원도심 4구 행정통합이 바람직”
- ▲ 부산 서구 천마산에서 내려다본 부산 원도심. photo 류열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안병길 원도심미래연구원장을 비롯해 현역인 자유한국당 유기준 의원(4선)의 출마가 예상되는 부산 서구동구 선거구는 부산에서 가장 이상한 선거구다. 동일한 국회의원 선거구로 묶여 있지만 지리적으로만 맞닿아 있을 뿐 서구와 동구를 직접 연결하는 도로는 단 한 곳도 없다. 서구에서 동구, 동구에서 서구로 가려면 가운데 놓여 있는 중구를 가로질러 가야 한다. 하지만 서구와 동구는 2016년 20대 총선 때부터 단일 선거구로 묶여 선거를 치러내고 있다.
기형적인 선거구 형태는 지난 20대 총선 때 선거구 조정을 하면서 당시 인구하한선(14만명)에 미달하는 중구동구 지역구를 쪼깨 중구는 영도구, 동구는 서구에 각각 붙이면서 만들어졌다. 마침 부산 중구동구 선거구는 국회의장을 지낸 정의화 전 국회의장(5선)의 지역구였다. 국회의장을 지내 관례적으로 불출마하게 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지역구(중구·동구)를 두 개로 쪼개서 바로 옆 지역구에 붙이는 것은 가장 손쉬운 방안이기도 했다. 마침 서구와 영도구 역시 각각 인구하한선(14만명)에 미달했다.
결국 2016년 20대 총선 때부터 인구가 가장 적은 중구를 가장 많은 영도구에, 그 다음으로 적은 동구를 서구에 통합하는 조정이 이뤄졌다. 하지만 서구와 동구는 지리적으로만 닿아 있을 뿐 실제로는 직접 연결되는 도로조차 하나 없다. 오히려 생활권으로만 치면 해운수산업 종사자들이 많고 남항대교로 이어진 서구와 영도구가 한데 묶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지적이다.
최종적으로 이를 해소하는 방법은 동일 생활권인 원도심 4구를 한데 통합하는 것이다. 원도심 4구는 모두 합친 인구가 36만여명으로 해운대구(41만명) 하나에도 못 미치지만 각각 자치구청장을 두고 있어 행정 비효율과 낭비가 심각하다. 4명에 달하는 구청장들이 공천권을 틀어쥔 지역 국회의원들 아래 줄서기하는 현상도 심각하다. 안병길 원도심미래연구원장은 “원도심 인구가 감소하다 보니 서병수 전 부산시장 때 중구와 동구를 중심으로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한데 가장 작은 중구에서 반대해 무산됐고 오거돈 시장 취임 이후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는 원도심 4구를 모두 합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했다.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589100017&ctcd=C02